또다른 영상

충의사(의병장 최경회장군 사당) (사진)

언제나민들레 2020. 9. 13. 23:11

2020. 9. 9(수) '충의사'(의병장 최경회장군 사당/ 논개 사당) - 전남 화순군 동면 백용리 422

 

 

0. 의병장 최경회장군과 논개 :  의병장 최경회 장군(1532~1593)이라 하면 아는 사람 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최경회장군은 현감, 군수, 부사의 관직에 두루 재직하던중 부모상으로 고향 화순에서 임란을 맞아 의병을 모아

싸우다진주성 전투에 아들 조카들을 포함한 지원군으로 참여하다 임란 끝무렵 (1593) 6월 제2차 진주성 전투중 중과부적으로 성의 함락에 분개하여 김천일, 고종후(고경명의 자)등의 삼장사는촉석루에 올라 통곡의 잔을 나누어 마시고

투신하였다.

  훗날 충의(忠毅)라는 시호를 받았으며 진주의 창열사에 그와 더불어 삼장사를 기리고 있으며

이곳 고향에는 2003년에 사당(충의사)을 지어 배향하고 있다.

 

   논개는 최경회장군이 전북 장수 군수로 재직하던 때 후처로 들였던 여인이고, 최경회장군이 진주성 전투에서

왜군에게 패하고 생을 마감하자 복수를 다짐하고 그들 왜병장들에게 기녀의 신분으로 속인후 촉석루에서

왜장 게야무라 야스케를 껴안고 남강에 몸을 던진 슬픈 사연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충의사 내부 한켠에는 논개의 영각이 모셔져 있다.

 의암 논개는 성은 주씨(朱氏)이고

전북 장수군 임내면 주촌마을에서 태어났다고 전해지는데

출생일에 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다.

논개에 대한 기록은 광해군 때 유몽인이 저술한 <어우야담>에

전하는데 '진주의 관기이며 왜장을 안고 순국했다.'라는

간단한 기록만 남아 전해오지만 기녀의 신분이 아니었다는게 학설이다. 

 ​그 때문에 논개는 기생이었다고 알려지게 되었는데

전해져 내려오는 말에 의하면 논개는 원래 양반가의 딸이었으나 아버지 주달문이

사망하고 집안에 어려움이 겹쳐 가산을 탕진하자 장수현감이었던

최경회의 후처가 되었다고 전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