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일로 죄송한데요. 도와 주세요'
사진 2011. 05. 25 (수요일) '무등산' 토끼등 ~ 중머리재
'이런 일로 죄송한데요. 도와 주세요'
오늘 오후 4시 15분
30대 중반 남자의 다급한 도움 요청이다
네비에 찍힌 문구는
"여자 친구가 죽어 버리겠다며
과도를 가지고 집을 나갔다"는 것으로
보다 정확한 내용과
어떻게 대처해야 좋을지를 판단하기 위해
민원인과 통화를 하여 보니
"사실은 여자 친구와 나이 차이가 많지만
함께 살고 있다
말다툼 끝에 과도를 가지고
뛰쳐 나갔는데 불안하다
예전에도 과도로 팔을 긁으며
자해 한적이 있었다"고 하므로
우리는 여자 친구가 뛰어갔다는
야산을 함께 오르게 되고
등산로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 보지만
누구 한사람 보았다는 사람이 없다
야산에는 여러 갈래의 등산로가 있으므로
각자 다른 길을 따라 찾아 보지만
어디에도 흔적이 없다
우리는 더 많은 사람들을 지원 받아
함께 찾아 보기도 하지만
벌써 날이 어둑해지고
몸통은 땀으로 끈적거린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기만 하다가 혹시나 해서
산 아래 건물 주차장을 살피던 중
몸을 낮추며 도망치는 경미를 발견하고
뛰어가서 붙잡게 된다
팔목을 붙잡는 순간 너무 놀라
펄쩍 펄쩍 뛰는 경미를 보며
내가 더 놀랬던 것도 같지만
소지한 과도를 회수하고 재빨리 안심을 시키면서
사무실로 자리를 옮긴다
예상대로 경미는 팔을 여러차례 긁어
자해를 하였지만 심하지는 않으므로
우선 소독약만 바르기로 한다
경미는 올해 도시 근교 면소재지에서
실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전자제품 공장에서
한달간 일하다가 공장 사정으로 그만 두었다고 한다
엄마와 초등학생 여동생은 기초생활 수급자로
면소재지에서 단칸방을 얻어 살고 있으나
집이 허름하여 빗물이 샌다고 한다
식당일을 다니던 엄마는
허리가 좋지 않아 일을 그만 두고
매일밤 소주 2병 정도를 마시며 지내고
여동생은 공부는 하지 않고 피시게임만 하면서
돈만 달라고 한다는 것이다
술 마시면 엄마와 아이들을
주먹과 발로 때리던 아빠는
1년 전에 이혼한 뒤 또다른 살림을 차려
아이까지 낳고 살면서 "너희는 내 자식이 아니다"고
한다며 눈물을 훔친다
그러면서 주소가 따로 되어 있어야
엄마와 여동생이 수급자 혜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남자의 도움을 받고는 있으나
방은 따로 쓰고 있다며 수줍어 한다
경미를 안전하게 귀가 시키기 위해
참고적인 여러 사항들을 알아 보던 나는
놀라운 사실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경미가 과도 날로 팔을 그으며
자해하던 행동은
아빠가 가정불화를 일으키며
여러차례 보여 주었던 행동이라는 것이다
난 여기서 중요한 수칙 하나를 배우게 된다
아이들 앞에서는 어떤 일이 있어도
행동하나 말 한마디라도 자극적인 것을
보여서는 안된다는 것을...
난 경미에게
장차 집안을 일으켜 세워야 할 장녀가
과도로 팔이나 긁고 있으면 가족들의 희망은
어떻게 될 것이냐며 강한 훈계를 하여 본다
부족하기 이를데 없는 내가
완벽한 선생님 행세를 해본 것이다
앞으로는
아빠의 과거 술주정 행동은
절대 따라 하지 않기로 하고
좀 더 밝은마음으로 살아갈 것도 약속하여 본다
우선 경미가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취직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생활정보지를 통해 계속 알아보고 있다는 말에
안심이 되었고
더 이상의 도움을 줄 수 없는
한계가 원망스런 저녁 시간이다
0. 2011. 07. 01 (금요일) 주간 근무 후에...
0. 경미 : 아이를 생각하여 '가명'을 사용한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