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꽃 향기'
사진 2011. 05. 25 (수요일) '무등산' 서석대 아래
'국화꽃 향기'
(김하인 장편소설 '국화꽃 향기'를 읽고...)
승우가 미주를 만난 건 대학교 신입생 때로
미주가 승우 보다 두살이 많은
학교 선배다
외교관으로 일하던 부모와 함께
외국에서 살다가 돌아온 승우가
학교로 향하는 전철 안에서
머리칼에서 국화꽃 향기가 나는 미주를 만난 것이다
두 사람은 영상 동아리에서 다시 만나고
서로 호감을 가지고 지내긴 했어도
미주가 연상인 까닭에
사랑하는 사이로 발전하진 못한다
언젠가 서클회원들이 동해안 해수욕장으로
몇일간 영화 제작 활동을 나갔을 때
승우가 미주에게 사랑 고백을 하였던 일이 있었지만
승우는 취중이었고 미주는 선배라는 이유로
그 사랑을 거절하였다
수년 후
미주는 충무로에서 영화를 제작하는
일을 하게 되고
승우는 FM 라디오 팝음악 방송
프로듀서 일을 하게 된다
승우는 날마다 애청자 사연을 가장해서
미주를 그리워 하는 사연을 내 보내고
우연히 음악방송을 듣던 미주는
승우가 아직도 자신을 일편단심
사랑하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승우의 해바라기 같은 오랜 집착이
미주의 마음을 열게 하고
결혼으로 이어지긴 하지만
그 사랑이 오래가진 못한다
산부인과 원장으로 일하는 정란은
미주의 대학교 친구로
미주의 임신이 3개월째란 걸 확인하고
임산부가 건강한지를 체크하기 위해
추가 진찰을 해 보게 되는데
놀랍게도 미주가 위암 3기라는 상태를
확인하게 되면서
이제 미주는 자신과 태아의 생명을
어떻게 결정해야 할지 심각한 상황에 빠지게 된다
승우를 너무나 사랑하는 미주는
어떠한 경우에도 아기를 낳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고
승우는 사랑하는 사람의
임신 사실을 알고 좋아 하지만
위암 말기라는 사실은 알지 못한다
나날이 쇠약해지는 미주가
위암 증상을 끝까지 감춰 보지만
안타까워 하던 정란이 승우에게
모든 사실을 말하면서
이제 승우와 미주는 서로가 애틋해진 부부로
뱃속 아기를 돌보며
하루 하루를 사랑으로 버티어 낸다
미주의 배가 남산 크기로 변해 가면서
증세는 더욱 악화되어 가고
극심한 통증은 진통주사도 소용이 없고
모르핀이라는 마약 성분의 주사만이
간신히 효과를 나타내는
지경에 까지 이른다
미주 나이 서른 셋
병실 창밖으로 눈이 내리던 어느날
미주는 제왕절개 수술을 받아
귀여운 딸아이를 출산하게 된다
전신 마취를 통해 겨우 아기를 낳긴 했지만
미주는 이제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이르렇고
간신히 깨어난 미주가
마지막 말을 남긴다
" 승우씨. 우리 딸 참 예쁘다.
당신을 닮았어.
크면 참 예쁠 것 같다.
하지만 어쩌지
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할 거 같다. 미안해.
그동안 미운 연상의 여자를 사랑해 주고.....
함께 살아줘서 정말 고맙고 감사해.
내겐 과분한 사랑이었어.
그 빚을 어떻게든 갚아 보려 했는데.....
이렇게 돼 버렸네.
나 너무 미워 하는 거 아니지.
내가 당신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지.
당신이 혹시 날 따라 올까 봐
내가 우리 딸을 낳았다는 거 모르지.
우리 딸은
당신의 사랑에 대한 내 선물이야.
우리 딸은 국화향 말고 쟈스민 향이나
프리지아 향이 날지도 모르지.
내가 우리 딸 머리를 빗겨 주면서
그 냄새를 꼭 확인해 보려고 했었는데.....
나. 언젠가 당신이 말한 하늘 우리집
오리온 자리로 먼저 가 있을게.
그곳에서 당신 좋아하는 김치찌개 끓여놓고
우리 딸이 좋아할 계란말이 해 놓고
기다리고 있을게.
잊지 말고 꼭 와야 해.
별로된 우리집을 내가 얼마나 예쁘게 꾸몄는지
당신과 우리 딸에게 꼭 보여주고 싶어.
당신. 내 눈에 보여도 이토록 그리운 승우씨.
당신 눈과 코 입술이며 목소리 그리고 냄새.....
당신과 보낸 날도 잊지 않고
내 영혼에 모두 담아 갈게.
나 없다고 울지 말고...
이젠 겨울도 지났잖아
봄이야. 우리 딸이 봄을 가져온 거야......"
승우가 미주의 입술에
아기의 볼을 붙여 준다
미주가 희미한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잠시후 모든게 일시에 하얗게 변해 버린다
국화꽃 향기 나는
미주의 머리칼을 그토록 사랑했던 승우가
미주의 머리칼에 슬픈 얼굴을 묻는다
0. 2011. 06. 30 (목요일) '국화꽃 향기'를 읽고...
(김하인 장편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