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수필

'그날 춤을 추리라'(안중근의사)

언제나민들레 2011. 1. 4. 04:15

 

 

 그날 춤을 추리라 (안중근 의사)

 

 

눈 언저리가 날카롭고

염소수염의 작은 키에

늙고 탐욕스런 모습의 이토히로부미 사진을

안의사가 눈에 꼭 꼭 새겨 넣는다

 

안동지의 어깨에

우리 이천만 겨레의

장래가 걸려 있소

 

그렇소

지금까지 죽지 않고 살아온 건

바로 이 일을 하기 위함이었소

밤을 꼬박 세운 안의사의 눈빛이

더욱 초롱 초롱해 진다

 

최고 권력자 이토의 죄상과

일본의 국권침탈 그리고 우리나라의 처지를

세계 만방에 고할 것이다.‘

기차야 하얼빈으로 빨리 달려라

안의사의 가슴은

기차 만큼이나 고동친다

 

조국과 고향을 떠나온 삼년 동안

손가락을 잘라가며 결의 하였으나

조국을 구해낼 기회가 없었다

 

간밤에 비바람이 쳤는지

철로변의 황금빛 들판이

흥건히 물에 젖어있다

 

북간도 땅을 지나

모스크바로 향하는 열차에

몸을 실은 안의사는 꼬박 하루만에

하얼빈역에 도착하고

 

우덕순 동지!

거사가 성공되면

우리는 곧 잡혀 죽을 것이오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모습이니

사진 한장 찍어 둡시다

두사람이 사진관으로 들어간다

 

내일을 위해

식사를 든든히 해 두시오

안의사는 간밤의 초조함과

또 다른 조바심에 잠을 이룰 수가 없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러시아 헌병이 거류민단 뒷줄에 있는

안의사에게 다가와 신분증을 요구하자

유동하 통역이 러시아말로 대답한다

이 분은 일본 신문기자 랍니다

 

안의사가 외투 깊숙이 들어있는

권총을 확인하며 만져 볼 때

새까만 기관차 머리가

하얼빈역에 서서히 정차한다

 

러시아 군악대의

우렁찬 음악이 플랫포옴에 울려 퍼지고

아주 작달막한 늙은이가

열차에서 내린다

 

사열을 마친 이토가

일본 거류민단 쪽 안의사 앞으로

징글맞은 얼굴을 들고

한발 더 다가선다

 

때는,

일천구백구년 시월 이십육일 아홉시 십분

네 이놈 이토야!

이천만의 총탄을 받아라

안의사가 헌병들 사이로 한발 나가며

권총 방아쇠를 연발로 당길 때

 

이토가 곤두박질치며 쓰러진다

명중이다 명중

안의사가 총을 내 던지며

두 손을 높이 들고 외친다

대한독립 만세 만세 만세

 

일찌기 진해 현감을 지낸 조부와

과거에 급제한 대문장가의 안진사

그의 장남으로 부족함 없이 자랐으나

일본의 국권침탈 앞에서

오직 조국만을 생각하며 고생하셨던

나이 삼십세 안의사의 마지막 모습은

감격 그것이었다

 

그리고,

일천구백십년 삼월 이십육일 열시 십오분

홀어머니와 처자를 남긴 안의사가

중국의 여순감옥에서 순국하신다

 

유가족에게 시신을 넘기겠다던 일본이

약속을 팽개치고

안의사를 검은마차에 빼돌려

비안개 속으로 사라진다

 

지금도 안의사의 유골은

그 안식처가 묘연하고

여순감옥의 슬픔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0. 2011. 1. 1. ‘안중근라를 읽고나서...